시작은 중고 명품 시계 중개였다. 외환위기로 많은 이들이 어려웠던 시절, 대학생이었던 MOI 김한뫼 대표는 당시 압구정 중고 시계 매장에서 명품 시계를 헐값에 사 되파는 것을 봤다. 이 모습을 본 김 대표는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중고 시계 매매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자개에 옻칠을 한 ‘나전칠기 시계’로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인 스위스 바젤월드에서 많은 호응을 받아왔다. 올해엔 우리나라 전통 그림을 옻칠로 그린 시계로 외국 시계 매니아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시계 무브먼트 강좌도 함께 열고 있는 그의 목표는 “우리나라 시계 산업이 발전할 토양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 중개로 시작해 수리·제작 독학...MOI 워치 세우기까지
- 시계 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하다.
“1998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외환위기로 등록금을 내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우연히 압구정 중고 시계 매장에서 낮은 가격에 명품 시계를 사서 되파는 걸 보고, 시계로도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고 시계 매매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계 공부를 시작했다. 구매자가 사려는 시계가 진품인지 확인해주기 위해 백화점과 이태원을 오가며 명품 시계 진품과 가품을 보면서 시계 공부를 했다.”
- 수리·제작 공부는 어떻게 했나?
“군대에 입대해 시계 수리와 제작을 독학했다. 갈수록 시계에 대한 애정이 커져 직접 시계를 만들고 싶어졌다. 단순히 시계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시계를 즐기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공부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창업 자금을 모아 2014년 MOI 워치를 세웠다.”
- MOI 워치의 상징 격인 자개 시계를 만든 계기는?
“나만의 시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아이디어를 얻으러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전통공예 전시에서 나전칠기를 보고 ‘자개의 은은한 빛을 다이얼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전칠기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생님께 자개를 만드는 감입 기법을 배우고, 혼자 화학 책과 접착 방식을 공부해 시계의 황동에 자개를 붙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다이얼 두께를 줄이는 기술을 익히는 데에도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 은은한 색감과 전통이라면 승산있어
- 우리나라 전통 공예인 자개가 외국에서 인기를 끌 거란 확신이 있었나?
“감입 기법의 역사는 1000년이 넘었다. 반면 스위스 유명 시계 회사인 바셰론 콘스탄틴은 1755년에 세워졌다. 역사가 길기로 유명한 곳이다. 자개의 은은한 색감과 감입 기법의 전통이라면 디자인 경쟁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 시계 제작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자개 다이얼을 제작을 익힌 뒤 시계 부품을 만들 사람을 찾기 위해 스위스로 갔다. 여러 곳에 연락을 한 결과 며칠만에 세계적인 시계 디자이너 이반 아르파에게 함께 시계를 만들자는 연락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기어S3 디자인에 참여한 디자이너로 스위스 시계 회사 ‘아르티아’의 대표다. 이반 아르파와 함께 시계를 만들어 2017년부터 바젤월드에 자개시계를 출품했다.”
- 실제 반응은 어땠나?
“2017년 처음 바젤월드에 출품한 시계 10피스가 모두 팔렸다. 지금도 네덜란드·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미국·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주문을 하고 있다. 올해는 옻칠 시계를 직접 차고 갔는데, 출품한 피스가 아닌데도 많은 시계 제작자·바이어들이 먼저 ‘무슨 시계냐’고 물어보면서 긍정적인 평을 남겼다.”
◇ 우리나라 시계 산업 발전할 토양 만들었으면
- 내년 바젤 월드엔 어떤 시계를 가져갈 건가?
“옻칠로 다이얼을 디자인한 시계를 준비해 전시할 계획이다. 스위스에서는 옻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옻칠로 만든 시계는 우리나라 시계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궐이나 몽유도원도를 다이얼에 그려 새로운 라인을 만들 생각도 있다.”
- 시계 무브먼트 강좌도 연다고 들었다.
“맞다. 기본·심화·고급 과정으로 나눠 이론을 배우고 실습해볼 수 있는 강좌다. 올해 4월 기준으로 고급 과정을 마친 수강생만 5명일 정도로 많은 시계 매니아들이 찾고 있다. 창업을 하는 수강생도 있고, 스위스·독일 시계 학교로 유학을 가는 수강생들도 있다. 최근엔 스위스의 국제시계학교 보스텝에 폴리싱 단기 과정을 건의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득 속도가 빠른 편이지 않나. 단기 과정을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다. 실제로 보스텝이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 3월부터 폴리싱 단기 수업을 열고 있다.”
- MOI워치의 목표가 궁금하다.
“처음엔 돈을 벌고 싶어서 시계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시계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나라엔 현재 시계 교육 기관이 적고, 국산 시계를 사려는 이들도 적다. 시계 산업이 발전하기 힘든 상황이다. 내 사업의 성공과 별개로 훗날 누군가 날 참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지 않나.”
우먼스플라워 주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