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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본 관객이 '이 영화 보러가야겠다' 할 때 희열 느끼죠"

영화사 진진 마케터 윤혜인씨 인터뷰
여고괴담2에서 위안받아 진로 설계
"영화보다는 문학을 더 좋아하긴 했다"

놀이터의 뜨거운 햇빛, 목욕탕 냄새, 해지는 베란다. 가끔은 국어사전보다 이런 풍경들이 ‘유년시절’이란 단어를 더 잘 설명한다. 문학을 좋아했던 그녀가 영화에 빠진 것도 교환학생 시절에 했던 ‘진짜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밖에서 더 많이 이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사 진진의 마케터 윤혜인(26)씨의 이야기다. 진진은 ‘아메리칸 셰프’, ‘원스’, ‘일일시호일’, ‘안도타다오’ 등의 영화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유명 배급사다. “언어를 뛰어넘는 소통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여고괴담2’ 인물들로 위로 받아..영상으로 소통 꿈꿔

 

-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영화사 진진에 2018년 마케터로 입사했다. 예고편·포스터 등의 영화 선재 제작 기획, 카피·보도자료 등 홍보안 작성, 프로모션 진행 등을 맡는다.”

 

- 영화를 좋아한 계기가 있다면?

“중학생 때 사춘기를 강하게 겪은 편이다. 그때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이 많았는데 우연히 <여고괴담2>를 봤다. 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외로운 아이들에게 공감하면서 위로받았다. 그들의 외로움·고독·방황·두려움이 와닿았다. 말하지 않고 상황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어서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 영화보다 문학을 더 좋아했다고 들었다.

“사춘기 때부터 영화를 좋아한 건 맞지만, 그 뒤로도 영화보다는 문학을 더 좋아했다. 글을 통해 상상한 세계를 전달하는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글을 통해서는 마음이 닿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때 영상으로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 언어 외에도 소통 방법은 다양한데 굳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언어로 소통할 수 없을 때,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체감했다. 표정·온기·그 날의 공기, 이런 것들이 사람을 가깝게 만들면서 기억에 남았다. 우연히 영상 워크숍에서 말하고 싶은 것들을 편안하게 전달하는 경험을 하면서, 영상으로 사람들과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영화수입사로 이끌어준 프랑수아 오종의 <프란츠>

 

-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다시 또 보고 싶고,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터널 선샤인>, <중경삼림>, <렛미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서사구조가 뚜렷한 영화는 한번 보지만, 캐릭터와 정서가 분명한 영화는 여러 번 보게 되는 것 같다.”

 

- 영화수입사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일을 했나?

“영화잡지에 글을 쓰고 영화 연출부에서 일했다.”

 

- 영화수입사 입사를 꿈꾼 계기가 있다면?

“스웨덴 교환 학기 중에 스톡홀름 국제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일을 끝내고 상영 중이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프란츠>를 다른 봉사자들과 봤는데, 마음에 들었던 영화여서 귀국한 뒤에 국내 수입됐을 때 표를 사서 다시 봤다. 졸업 영화를 준비하면서 지쳤던 때라 그런지 <프란츠>를 다시 봤다는 게 너무나 큰 선물 같았다. 그때 영화수입사 근무를 처음 생각했다.”

 

- 수입 영화를 보는 이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기 힘들 텐데.

“맞다. 하지만 영화수입사에서 일하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한국 관객들과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영화를 선택해, 또 다른 사회로 전해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못했을 때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영화수입사에서 일하는 것도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 취업 정보 등은 어떻게 얻었나?

“씨네21 리크루트 페이지를 참고했다.”

 

◇ “영화의 본질에서 오는 매력 살리고 싶어”

 

- 현 직무와 직장을 택한 이유는?

“영화 홍보에 관심이 있었고,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현실적으로 가장 잘 맞을 것 같아 영화 마케터를 선택했다. 진진은 다양한 작품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 지원했다. 실제로도 체계가 잘 잡혀있고 성장할 기회가 많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면?

“영화 포스터·예고편을 보고 나서 ‘이 영화 봐야겠다’는 관객 반응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매번 다른 영화를 마케팅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고 이미지 작업과 글 작성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영화 마케팅 업무가 잘 맞을 것 같다.”

 

-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마케팅은 ‘포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마케팅이나 상품 마케팅과 영화 마케팅의 차이는 포장 안에 ‘서사가 있는 종합예술의 덩어리’가 들어있다는 점 같다. 트렌드에 매몰되기보다는 영화의 본질에서 오는 매력을 잘 살려 마케팅을 하는 게 목표다. 투명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마케터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첫 꿈이 소설가였던 만큼 완전히 내 마음에 드는 장편 시나리오 한 편을 써보고 싶다.”

 

- 동종 업계 근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영화 스케줄에 맞춰 일을 하기 때문에 업무가 유동적이다. 그만큼 개인 시간을 쓰기 어려울 때도 많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만큼의 보람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어느 쪽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지 생각해보길 추천한다.”

 

우먼스플라워 주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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